창세기 45장, 욥기 11장, 마가복음 15장, 로마서 15장
창세기 45장
정체를 드러낸 요셉. 애굽의 전권을 가진 총리가 자신들이 팔아넘긴 요셉임을 알게 된 형제들은 불안에 빠지고 야곱은 요셉의 생존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형제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라진 동생이 나타난 것을 기뻐하지도 자신들이 큰 위기에서 놓임을 받게 된 것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이런 종류의 일이 기뻐하지 못하고 씁쓸해 한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았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을 애굽에 판 것은 형제들만 알고 있던 비밀이었다. 이 비밀을 공개함으로써 요셉은 자신이 바로 그 요셉임을 증명한다. 또한 요셉은 모든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깊은 믿음이다.
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바로는 재산은 버려두고 내려오라는 말로 애굽에서 좋은 것을 주겠다는 약속을 확실하게 한다. 바로는 야곱 일가에게 특히 기름진 땅을 주려고 한다. 마치 은혜를 갚으려는 태도다.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야곱이 족하다는 말을 한 이유는 아마도 형제들이 숨겨 놓은 죄를 고백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욥 11장
소발의 첫 번째 이야기. 소발은 격하게 욥을 책망한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첫째 욥이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는 태도이고 둘째는 자신이 계속 결백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엘리바스가 말한 계시의 경험도(4:12), 빌닷이 말한 선조들의지혜(8:8)에도 욥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몸소 깨우쳐주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소발은 하나님이 지은 죄대로 다 갚지 않으시는 인자하신 분이라고 대꾸한다.
마가복음 15장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 사형을 선고 받고 군인들에게 조롱을 당하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무덤에 장사되심.
빌라도는 종교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이 고소당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 사건을 신속하고 괜찮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들의 시기심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그들의 시기심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나서야 끝난다는 것을 깨달은 때는 너무 늦었다.
백성들은 지금 마음껏 예수님을 조롱하고 경멸하지만, 그날이 오면 그들이 했던 조롱과 경멸이 자기에게 돌아갈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서 죽을만큼 부끄러워질 것이다.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사람들이 조롱하고 경멸하는 순간에도 믿음이 싹트는 사람이 있다.
로마서 15장
성도는 서로 받아들여야 한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바울이 했떤 한 사역과 앞으로의 사역 계획.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확신이 옳다 하더라도 확신에 따라서 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살고 약한 자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을 배척하지 말고 약점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우리는 늘 죄를 짓고 주님을 배신하고 회개할 꺼리들이 넘쳐나는 온전하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셨다. 우리도 서로를 그렇게 받아야 한다. 부정적인 것과 시기하는 말, 나쁜 말들을 접어 놓고 놓은 말, 긍정적인 말들을 하자.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영적인 것을 나눠 가진 사람들이 육적인 것을 나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눔과 소통은 초대 교회가 잘 실천했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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