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 욥기 3장, 마가복음 7장, 로마서 7장
창세기 37장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이 높아지는 꿈을 꾸고 미움을 받는다. 그리고 결국 형제들의 손에 애굽으로 팔린다.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은 형들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았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늦게 얻은 아들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고 채색옷을 지어 입히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의 말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아버지와 형제들) 언짢게 했다. 꿈은 장차 될 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암시하는데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동의하지 않고 그것을 싫어한다고 해도 결국 이뤄진다.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 때로 형들의 시기를 받을 수도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말씀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요셉의 꿈을 방해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꿈 꾸는 자를 죽여 그 꿈이 이뤄지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열심은 인간의 어떤 방해에도 마침내 그 뜻을 이룬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기 위해서 어떤 방해를 뿌리치고 장애물을 건너신다.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불화의 도화선이었던 채색옷은 형제들이 특히 미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셉을 처치한 이후에 그 채색옷은 아버지를 속이는 증거물이 되었다.
욥기 3장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난 욥은 자신이 세상에 난 것을 탄식할 지경이 되었다.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이날, 하나님의 창조가 취소되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욥은 생명이 나는 모든 순간을 다 하나님의 창조로 바라보고 있다. 캄캄함은 창조가 아직 시작되기 전의 어두운 상태를 가리킨다. 욥은 계속해서 어두움을 이야기한다.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태어나다가 죽었다면 차라리 지금 안식을 누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죽은 자의 안식을 여러 번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세히 묘사한다.
마가복음 7장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데 관심이 없다고 트집잡는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시는 예수님.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심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경건은 기만이다. 그런 경건은 첫째로는 자신을 속이고 둘째로는 치명적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빠져나가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진실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바로 죄의 근원이라는 점이다. 우리 안에서 넘치는 죄들이 솟아난다. 어떤 행위나 어떤 고백이나 모든 종교적인 시도들은 다 내면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변화가 우리의 목표다.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고 집요하게 간청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 사람의 경계선을 허무는 신앙이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기뻐하셨다. 이것은 적극적인 믿음이다.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주님은 우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기를 소망하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처럼 귀가 들리지 않고 혀가 굳은 사람들이 아닐까? 복음을 듣는가? 그것을 변화되었는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로마서 7장
율법에서 자유한 그리스도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의 특징.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에 속해 있지 않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인간이 자기 힘으로 삶을 살려고 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욕과 범죄에 놓여 있었고 곧 죄로 인해서 죽어야 하는 길에 놓여 있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작용하시면 속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만드신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는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으로 사람 속에 숨어 있다가 계명을 통해서 깨어나 작용하게 되며 율법을 왜곡시켜서 마침내 은혜가 아닌, 죽음을 가져 오는 연장으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표다. 곧 인간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죄의 치명적 성격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율법은 신령한 것이다. 곧 하나님께 근원을 둔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거듭 율법을 죄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죄에 팔려 있기 때문이다.
죄 아래 팔려 간 인간은 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국 파멸과 죽음을 일으키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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