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3일 월요일

2014. 02. 03 성경읽기

창세기 35~36장, 욥기 2장, 마가복음 6장, 로마서 6장


창세기 35장

하나님은 다시 벧엘로 올라온 야곱을 만나시고 복을 주심. 베냐민의 출생과 라헬의 죽음. 야곱의 열두 아들이 소개되고 고햐으로 귀향함. 이삭이 죽음
https://blogger.googleusercontent.com/img/b/R29vZ2xl/AVvXsEgoE7HgRe1Ao09Etaqa14oeQclL7mCE19sKcwebX-moK2FTAtsU0bwPOk_OZJFo-qnE76eznIbeKLI4po3CAdEjiDqvEbOmZoGIis_40e6-qxbYEAAgheTHoo8DNCF7y5BS2As9YSMLKto/s1600/711946_f520.jpg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벧엘은 야곱이 잘못을 저질러 달아나다가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자비를 경험한 곳이었다. 하나님은 야곱을 다시 이곳으로 부르신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 야곱은 거주해야 했다.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하나님은 그를 찾는 사람을 결코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신다. 찾고 구하는 자를 만나주신다.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아담에게 주신 복이 다시 야곱에게 반복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본문은 한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백성 전체를 향한 말씀이다.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은 유효하다.


창세기 36장

에서 후손의 계보, 에돔 왕국의 임금들과 족장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이스마엘 후손의 계보로 끝나는 것처럼 야곱의 이야기도 에서 후손의 계보로 끝난다. 에서의 자손과 야곱의 자손의 관계는 이스마엘 자손과 이삭의 자손의 관계와 유사하다.


욥기 2장

사탄은 욥이 건강하기 때문에 신실한 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욥의 육신을 쳐서 병들게 한다. 욥의 세 친구가 소식을 듣고 찾아옴.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a/Book_of_Job_Chapter_2-3_%28Bible_Illustrations_by_Sweet_Media%29.jpg

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말은 물건 값을 짐승 가죽으로 치르던 베두인 사람들의 교역을 배경으로 한 속담이다. 대략, 목숨을 건지려고 모든 소유를 기꺼이 내어 놓는다는 의미다. 사탄은 늘 인간을 유혹하고 시험하여 넘어뜨리고자 우는 사자처럼 배회한다. 때로 하나님은 사탄을 허용하실 때도 있다. 모든 것은 믿음을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신실한 사람들의 믿음이 더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욥의 질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병처럼 보이는 이 질병으로 인해 인간 사회를 떠나 마을 밖의 쓰레기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욥의 세 친구가 남쪽, 동쪽, 북쪽에서 찾아왔다. 이 세 친구들과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보면 그들이 당시 이스라엘 주변 세계 전체의 지혜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 6장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시는 예수님.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는 예수님. 세례 요한의 죽음.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심.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심.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c/Gospel_of_Mark_Chapter_6-24_%28Bible_Illustrations_by_Sweet_Media%29.jpg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를 보고 감탄했다고 다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신앙을 갖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통상적인 사회적인 범주에 배열시키고 납득하려고 한다. 불신자 안에는 계시에 대한 깊은 거부감이 들어 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요구에 벗어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도처에서 찾는다. 그러고는 모든 이유를 동원하여 믿지 않기로 작정한다.
기적은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을 열 때 일어난다.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권능을 과시하기 위해서 또 믿음을 강요하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아니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둘씩 보내시는 이유는 상호 도움을 주고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하는 내용이 절대적으로 믿을 만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실제로 이렇게 하라는 말도 되겠지만, 누구든지 하나님보다 자기의 물질, 장비 등을 더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하지 않다. 그런 사람은 그 자신은 물론 그가 전하는 복음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이 되게 한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고 이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것에 얼마나 무지하고 몽매한지 단적으로 제시하는 사건이다.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영혼과 몸을 돌보신다. 하나님의 복된 통치는 사람의 영혼뿐 아니라 몸, 곧 사람 전체에 해당된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제자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기적의 크기가 이성을 초월할 정도로 커지자 제자들의 무지함, 몽매함도 커져만 간다.
고독, 무지 속에 있는 제자들은 계속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의 행위를 접함으로써 진리를 점차 깨달아 갈 것이다. 우리도 매일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을 생각해야 한다.


로마서 6장

세례와 새로운 삶.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서 살아났다. 죄의 지배를 받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라.
http://www.biblestudyforyou.com/wp-content/uploads/2011/11/Broken-chain-300x225.jpg
세례는 죄에 대해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완전히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으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은 모두 죄에 지배를 당하지 않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기주의, 불순종, 하나님께 반항하는 습관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구체적으로 삶에 담아 둘 때 사라지게 될 것이다 .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비록 이 삶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새 삶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지금 역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의 요구를 처리하시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죄를 거부하고 자기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의에 삶을 맡길 때 그렇게 될 수 있다. 죄의 법이 은혜로 지배로 인해 대치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매일 우리의 삶은 불의를 섬기는 것에서 해방되어 의를 섬기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실천적으로 그런 삶을 살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살아갈 때 삶은 점점 더 하나님의 것이 된다.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