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2013. 12. 23 성경읽기

 

역대하 27~28장, 스가랴 10장, 요한복음 12장, 요한계시록 14장

역대하 27~28장
 
내용 및 해설
요담이 웃시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된다. 역대기는 인과응보가 정확히 제시되어 있다. 요담은 하나님께 정직하게 행한 결과 번영을 맛본다. 요담은 하나님을 적당히 따랐지만, 그 아들 아하스는 배도의 길을 간다. 아하스는 성전을 폐쇄하고 이방 신을 따른다. 번영을 맛보았다고 늘 후손들이 다 그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아하스의 망령되게 행한 것은 결국 낮추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조차 하나님께서 내 매일의 삶에 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모든 결정과 선택의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어떤 모양이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다 순종과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완악함의 극치는 곤고할 때 깨닫지 못하고 더욱 범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곤고하게 하시는 이유를 생각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임을 알 수 있다.

스가랴 10장
 
내용
하나님만이 진정한 구원자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그의 백성을 다시 강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여 이 일을 이룰 것이다.
 
2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하지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가 헛되므로 백성들이 양 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나니
 
하나님이 하신다. 드라빔과 복술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지도력을 발휘할 목자가 없으면 백성은 잘못에 빠져 망한다(겔 34:5~6).
 
9    내가 그들을 여러 백성들 가운데 흩으려니와 그들이 먼 곳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이 살아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돌아올지라
 
하나님이 그들을 사로잡혀 가게 하신 이유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이제 하나님을 기억하므로 남은 것은 귀환이고 복의 회복이다.

요한복음 12장
 
내용
베다니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값진 향유를 부었다. 다음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고 사람들은 호산나 찬양을 부른다. 이제 곧 영광을 받으실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신앙과 믿음에 대해서 가르치시지만, 사람들은 역시 믿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리스도인은 늘 역설적인 삶을 살아간다. 곧 죽어야 한다고 고백하며 매일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런 면에서 살았으나 죽은 자다.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불신앙의 이유는 사람의 영광 때문이었다. 진정한 신자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막고 가리는 사람의 영광을 미워해야 한다. 누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 14장
 
내용
어린양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소개된다. 그들은 순결하고 어린양처럼 거룩한 자들이었다. 세 천사가 나타난다.첫째 천사는 심판이 이르렀으니 경배하라는 소식을 둘째는 사탄이 패배했음을 셋째는 사탄을 따랐던 사람에 대한 심판이다. 반면 성도는 영광을 얻고 안식에 들어간다.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추수와 포도 수확의 환상이 나온다. 최후가 임박했다.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오 주여 누가 순결하며,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습니까?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를 용서하소서.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우리의 인내는 자기 성취를 위한 극기가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한 인내요. 믿음을 지키기 위한 인내다. 모든 인내가 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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