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0일 금요일

데오빌로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눅 1:3)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데오빌로’에게 쓴 글이다. ‘데오빌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데오스>와 친구 혹은 ‘사랑하는’을 의미하는 <필로스>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친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혹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번역할 수 있다. 이 명칭은 누가의 기록에서만 나온다눅 1:4; 행 1:1).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

 

데오빌로가 누구냐?에 대한 대답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데오빌로는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 황제 도미티안의 조카인 클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이다.이 주장은 클레멘스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가명으로 알려졌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기독교인을 비하했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귀족인 클레멘스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기는데에는 큰 위험이 따랐으므로, 가명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데오빌로 뒤에 각하라는 말도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2. 데오빌로는 신앙공동체의 호칭이다.데오빌로의 어원('하나님'과 '사랑하다')에 착안해 나온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누가복음 4절에 적힌대로 초신자인 데오빌로의 신앙을 확고히 하려 한 기술 의도가 약해진다. 
  3. 오빌로는 로마의 고위공직자 혹은 기사 계급에 속한 특정 인물이다. 현재 가장 많은 지지를 얻는 주장이다.

2012년 3월 25일 일요일

에스다올과 소라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삿 18:2)

<에스다올>은 '좁은 통로' 혹은 '후미진 곳'을 의미한다. 이 도시는 유다 지역에 속한 셰펠라에 속한 곳으로 삼손이 활동했던 소렉 골짜기(예루살렘에서 욥바에 이르는 계곡)와 가깝다(수 15:33). 이 지역은 여호수아에 의해서 단 지파에게 주어졌다(수 19:41). 하지만 단 지파가 라기스로 이주한 후에 유다 지파가 이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호수아와 사사기에서 에스다올은 자주 부근에 있던 <소라>와 함게 나열된다. 소라와 에스다올, 그리고 소렉 골짜기는 사사기 18장에 언급되는 단 지파의 이주 사건과 관련되어 처음 나오는 지명은 아니다.  최후의 사사였던 삼손의 주 활동 무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삼손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또 최초로 하나님의 영을 받아 능력을 나타낸 곳도 여기였다(삿 13:25). 그는 소렉 골짜기에서 블레셋 사람에게 붙잡혔으며, 가사에서 죽은 이후 사람들이 그의 에스다올과 소라 부근에 있던 조상(혹은 아버지)의 묘에 장사했다(삿 16:31).

분열 왕국 시대에 르호보암은 해안에서 예루살렘으로 침입할 수 있는 길목을 차단하고자 소라에 견고한 성채를 건설했다(대하 11:10). 또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유다 자손이 고국에 돌아와 정착한 지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느 11:29).

에스다올과 소라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