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5일 수요일

2014. 02. 05 성경읽기

창세기 38장, 욥기 4장, 마가복음 8장, 로마서 8장

창세기 38장

유다와 다말, 유다의 세 아들 가운데 두 아들이 죽자 막내를 아낀 나머지 유업을 잇는 일을 포기한 유다. 다말은 이런 유다에게 유업을 잇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하나님은 이기적인 동기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신다.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다말은 단순히 후손을 얻을 권리만 찾으려 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명예와 목숨을 걸고 남편이 제 권리를 찾도록 나선 것이다. 막내 셀라가 죽을까 봐 다말에게 주지 않는 시아버지를 향해 다말은 결국 시아버지가 권리를 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 된다. 유다는 본의 아니게 셀라가 해야 할 의무를 대신 한 것이 된다.
유다는 이 모든 일을 보고 솔직하게 다말이 옳다고 말함으로써 의로움을 드러낸다. 목숨을 건 다말의 행동은 다윗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욥기 4장

욥과 친구들이 대화가 시작된다. 첫 번째로 나선 인물은 엘리바스였다. 욥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서 하나님의 뜻이 옳다는 것을 변호하기 시작한다.
엘리바스는 평생 자신이 경험한 바를 욥에게 말한다. 아마 그가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그가 제일 연장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말을 통해서 살펴보면 그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도 체험한 신령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인간은 연약한 존재다. 사람은 보통 죄에 빠지기 쉬운 약한 존재다. 욥도 인간인 이상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지 못하며 제거하지 못한 허물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천사도 미련하다고 하시는 탁월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눈에 인간은 오죽하겠는가?

불멸의 존재들인 천사들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데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오죽하겠는가?(19~20절)

마가복음 8장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심.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새인, 바리새인과 헤롯 왕에 대해 경고하심. 맹인을 치유하심.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심.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이유도 우리가 질병을 고침받는 이유도,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함 받는 이유도 하나다. 주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다.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바리새인들은 더 초월적이고 영적인 체험을 요구했다.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온 분이시라는 사실을 신령한 방식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증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사랑을 표시하는 징표는 있을 수 있지만, 사랑에 대한 증명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징표는 있지만 신앙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내 자신을 그 사람에게 신뢰하며 내어 맡기는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내 자신을 그 사랑 안으로 끌어 넣는 길 외에는 사랑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바리새인들과 헤롯은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 둘은 서로 상극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 둘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셨다. 그 둘은 예수님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전권을 가지신 분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쓸 데 없는 것과 허황된 것을 예수님께 요구했다.
제자가 이들이 가지고 있던 무지몽매함, 폐쇄성을 보인다면 주님께 책망을 들을 것이다.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북돋으실 때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로마서 8장

성령 안에서의 삶. 창조 세계의 희망과 구원의 확실성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더 이상 저주 아래에 있지 않다. 이것은 선언문이고 판결문이다. 모든 책임이 벗겨졌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확인이다. 자유! 자유! 자유! 인간으로는 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사 모든 죄를 해결하셨다.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은 단지 연약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그 때문에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본체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며, 그 영이 삶을 규정한다. 육신은 비록 죄로 인해서 지상에서의 죽음을 맛보아야 하지만, 영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지금 누릴 수 있다. 그 영원한 생명의 한 형태는 바로 하니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다. 이 관계를 누리라.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다. 이 관계는 신뢰, 내적 일치, 자유로운 책임성으로 각인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영을 통해서 인간의 사고와 의지와 감성의 중심부에 말씀하시며,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신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영은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을 편드신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모른다. 우리가 연약한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 완전한 규모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가운데 아무도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하는 자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에 사랑으로 응답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 심어저 고난일지라도 선, 곧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뭔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의 근거, 우리를 건져주신다는 믿음의 근거는 뭔가? 그리스도에게서 보이신 사랑. 

2014년 2월 4일 화요일

2014. 02. 04 성경읽기

창세기 37장, 욥기 3장,  마가복음 7장, 로마서 7장

창세기 37장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이 높아지는 꿈을 꾸고 미움을 받는다. 그리고 결국 형제들의 손에 애굽으로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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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요셉은 형들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았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늦게 얻은 아들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하고 채색옷을 지어 입히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요셉의 말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아버지와 형제들) 언짢게 했다. 꿈은 장차 될 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암시하는데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동의하지 않고 그것을 싫어한다고 해도 결국 이뤄진다.
하나님의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 때로 형들의 시기를 받을 수도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신 말씀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요셉의 꿈을 방해한 사람은 다름 아닌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꿈 꾸는 자를 죽여 그 꿈이 이뤄지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열심은 인간의 어떤 방해에도 마침내 그 뜻을 이룬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기 위해서 어떤 방해를 뿌리치고 장애물을 건너신다.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불화의 도화선이었던 채색옷은 형제들이 특히 미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셉을 처치한 이후에 그 채색옷은 아버지를 속이는 증거물이 되었다.

욥기 3장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난 욥은 자신이 세상에 난 것을 탄식할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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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이날, 하나님의 창조가 취소되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욥은 생명이 나는 모든 순간을 다 하나님의 창조로 바라보고 있다. 캄캄함은 창조가 아직 시작되기 전의 어두운 상태를 가리킨다. 욥은 계속해서 어두움을 이야기한다.

16    또는 낙태되어 땅에 묻힌 아이처럼 나는 존재하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을 것이라
17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피곤한 자가 쉼을 얻으며

태어나다가 죽었다면 차라리 지금 안식을 누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죽은 자의 안식을 여러 번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세히 묘사한다.

마가복음 7장

바리새인은 예수님이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데 관심이 없다고 트집잡는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시는 예수님.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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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경건은 기만이다. 그런 경건은 첫째로는 자신을 속이고 둘째로는 치명적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빠져나가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진실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바로 죄의 근원이라는 점이다. 우리 안에서 넘치는 죄들이 솟아난다. 어떤 행위나 어떤 고백이나 모든 종교적인 시도들은 다 내면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변화가 우리의 목표다.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인은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고 집요하게 간청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 사람의 경계선을 허무는 신앙이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기뻐하셨다. 이것은 적극적인 믿음이다.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주님은 우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기를 소망하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처럼 귀가 들리지 않고 혀가 굳은 사람들이 아닐까? 복음을 듣는가? 그것을 변화되었는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로마서 7장

율법에서 자유한 그리스도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의 특징.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에 속해 있지 않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인간이 자기 힘으로 삶을 살려고 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욕과 범죄에 놓여 있었고 곧 죄로 인해서 죽어야 하는 길에 놓여 있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작용하시면 속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만드신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는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으로 사람 속에 숨어 있다가 계명을 통해서 깨어나 작용하게 되며 율법을 왜곡시켜서 마침내 은혜가 아닌, 죽음을 가져 오는 연장으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이 점이 바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표다. 곧 인간의 한계를 드러냄과 동시에 죄의 치명적 성격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율법은 신령한 것이다. 곧 하나님께 근원을 둔다.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은 이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거듭 율법을 죄의 도구로 만들어 버린다. 죄에 팔려 있기 때문이다.
죄 아래 팔려 간 인간은 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국 파멸과 죽음을 일으키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2014년 2월 3일 월요일

2014. 02. 03 성경읽기

창세기 35~36장, 욥기 2장, 마가복음 6장, 로마서 6장


창세기 35장

하나님은 다시 벧엘로 올라온 야곱을 만나시고 복을 주심. 베냐민의 출생과 라헬의 죽음. 야곱의 열두 아들이 소개되고 고햐으로 귀향함. 이삭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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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벧엘은 야곱이 잘못을 저질러 달아나다가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자비를 경험한 곳이었다. 하나님은 야곱을 다시 이곳으로 부르신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 야곱은 거주해야 했다.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하나님은 그를 찾는 사람을 결코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신다. 찾고 구하는 자를 만나주신다.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아담에게 주신 복이 다시 야곱에게 반복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본문은 한 개인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선택하신 백성 전체를 향한 말씀이다.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은 유효하다.


창세기 36장

에서 후손의 계보, 에돔 왕국의 임금들과 족장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이스마엘 후손의 계보로 끝나는 것처럼 야곱의 이야기도 에서 후손의 계보로 끝난다. 에서의 자손과 야곱의 자손의 관계는 이스마엘 자손과 이삭의 자손의 관계와 유사하다.


욥기 2장

사탄은 욥이 건강하기 때문에 신실한 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욥의 육신을 쳐서 병들게 한다. 욥의 세 친구가 소식을 듣고 찾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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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말은 물건 값을 짐승 가죽으로 치르던 베두인 사람들의 교역을 배경으로 한 속담이다. 대략, 목숨을 건지려고 모든 소유를 기꺼이 내어 놓는다는 의미다. 사탄은 늘 인간을 유혹하고 시험하여 넘어뜨리고자 우는 사자처럼 배회한다. 때로 하나님은 사탄을 허용하실 때도 있다. 모든 것은 믿음을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신실한 사람들의 믿음이 더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욥의 질병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병처럼 보이는 이 질병으로 인해 인간 사회를 떠나 마을 밖의 쓰레기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욥의 세 친구가 남쪽, 동쪽, 북쪽에서 찾아왔다. 이 세 친구들과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보면 그들이 당시 이스라엘 주변 세계 전체의 지혜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가복음 6장

나사렛에서 배척당하시는 예수님.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는 예수님. 세례 요한의 죽음.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심. 게네사렛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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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를 보고 감탄했다고 다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신앙을 갖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통상적인 사회적인 범주에 배열시키고 납득하려고 한다. 불신자 안에는 계시에 대한 깊은 거부감이 들어 있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요구에 벗어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도처에서 찾는다. 그러고는 모든 이유를 동원하여 믿지 않기로 작정한다.
기적은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마음을 열 때 일어난다.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권능을 과시하기 위해서 또 믿음을 강요하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아니다.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둘씩 보내시는 이유는 상호 도움을 주고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하는 내용이 절대적으로 믿을 만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실제로 이렇게 하라는 말도 되겠지만, 누구든지 하나님보다 자기의 물질, 장비 등을 더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합당하지 않다. 그런 사람은 그 자신은 물론 그가 전하는 복음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이 되게 한다.

세례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고 이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것에 얼마나 무지하고 몽매한지 단적으로 제시하는 사건이다.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하나님은 영혼과 몸을 돌보신다. 하나님의 복된 통치는 사람의 영혼뿐 아니라 몸, 곧 사람 전체에 해당된다.

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제자들에게 도움이 된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기적의 크기가 이성을 초월할 정도로 커지자 제자들의 무지함, 몽매함도 커져만 간다.
고독, 무지 속에 있는 제자들은 계속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의 행위를 접함으로써 진리를 점차 깨달아 갈 것이다. 우리도 매일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을 생각해야 한다.


로마서 6장

세례와 새로운 삶.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와 함께 죽었고 그와 함께 영광 가운데서 살아났다. 죄의 지배를 받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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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죄에 대해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완전히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으므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은 모두 죄에 지배를 당하지 않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기주의, 불순종, 하나님께 반항하는 습관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구체적으로 삶에 담아 둘 때 사라지게 될 것이다 .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비록 이 삶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새 삶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지금 역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의 요구를 처리하시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죄를 거부하고 자기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의에 삶을 맡길 때 그렇게 될 수 있다. 죄의 법이 은혜로 지배로 인해 대치되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매일 우리의 삶은 불의를 섬기는 것에서 해방되어 의를 섬기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실천적으로 그런 삶을 살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살아갈 때 삶은 점점 더 하나님의 것이 된다.